6.25 전쟁때 우리를 도와준 나라! 이디오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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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용진 댓글댓글 2건 조회조회 2,943회 작성일 10-06-23 13:12본문
이디오피아!
오늘 우리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게 우리를 도와주었던 나라!!!
아프리카 대륙의 서북쪽에 있으며 6.25 전쟁 때 우리나라를 위하여 군대를 보내주었다는 사실밖에 모른체 떠나기 하루 전에야 대충 짐을 꾸려 집을 나섰다.
여행에서 가장 힘든 일은 시차 극복과 날씨의 변화 적응, 그리고 음식이다. 더욱이 나이가 들수록 그동안의 삶에 굳어 있어 새로움에 금방 익숙해지지 못하는 어려움을 많이 느끼게 되어 선 듯 집을 나서기가 어렵게 느껴진다. 그래도 어린시절 의사가 되려는 목표의 하나는 남을 위하여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었지만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채 세월이 다 가버린 것 같았다. 더 이상 미루기보다는 행동에 옮겨야겠다고 과감하게 결정을 하고 선한봉사센터에서 처음으로 떠나는 해외봉사에 참여한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잘 한 일인 것 같다.
서울에서 9시간 30분 만에 두바이에 도착, 4시간을 공항에서 기다렸다가 다시 4시간의 비행으로 거의 만 하루 만에 도착한 아디스 아바바는 남한의 약 5.5배의 국토를 가진 이디오피아의 수도로 해발 약 2300 m의 고지대에 있다. 우리나라 백두산에 오른 정도의 높은 지대이므로 조금 빨리 걷거나 계단으로 걸어서 숙소로 이동하면 쉽게 숨이 차고 머리가 아프기도 하였다. 예상했던 더위 대신 아침 저녁으로는 이른 봄 날씨의 복장이 도움이 되었다.
늦은 점심후 여장을 풀고 바로 다음날부터 Ras desta 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했다. 몰려온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룬 가운데 질서 있게 환자들을 보았지만 접수처에서는 순서대로 접수하느라 몇 번의 마찰도 있어 보였다.
총 2500여명의 환자를 진료하였고 내과는 하루 약 600여명의 환자를 보았고 그 이외에 피부과, 산부인과, 소아과, 외과, 안과, 치과 환자도 다수 있었다. VCS( Vision Car Service)에서 온 의료진과 함께 20 명 정도의 안과 수술도 시행하였다.
Cure 병원에서 15명 정도의 토순(cleft lip )환자를 수술하기로 계획하고 모든 수술에 필요한 준비를 해 온 연세의료원 동참 의료진은 진행과정에 차질이 있어 15명을 다 수술하지 못했으나 우리 의료진의 수술 실력을 보고 향후 자기 병원 의료진을 우리나라에 파견하여 교육을 받도록 의견 개진을 해왔다고 한다. 특히 기뻤던 일은 첫날 다리에 커다란 종양 덩어리가 있는 환자가 패혈증에 빠져 바로 다음날 일찍 수술하고 입원 치료하므로 사망하지 않고 극적인 호전을 하게 되므로 모두들 즐거워 하였다.
대부분의 내과환자는 요통, 흉통,복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이었고 당뇨, 고혈압 환자도 다수 있었다. TB 의심환자가 많았으나 진단적 제한이 있어 확진 내리는데 어려움이 많았고 의외로 호흡기 특히 천식환자가 다수 있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숨 쉴 수 없을 정도의 매연이 주범임을 알 수 있었다.
산부인과 선생님의 의견도 마찬가지였지만 여성들에게서 주로 골반염, 요로감염 의심환자가 많았고 아마도 생활 습관과 위생문제가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지 않겠냐는 의견이 개진되었다. 현지 안내를 도와준 KOICA(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직원에 의하면 HIV 양성 환자가 전체적으로 5명 중 1명이라는 설명으로 보아 많은 HIV 양성환자가 있겠지만 스스로 자신이 환자임을 밝히는 사람보다는 대부분은 자신의 감염사실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HIV감염이 우리나라에서 당뇨나 고혈압 정도의 질병으로 받아 들인다고 하지만 수직감염에 의한 HIV 양성 자녀가 태어나면 그냥 길에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귀국 전날 그런 아이들을 데려다가 치료해주고 보호해주는 종교단체 시설을 방문하고서 그 아이들의 맑고 슬픈 눈망울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가에 이슬이 맺혀졌다.
거리를 질주하는 버스, 택시, 승용차는 모두 다 낡아서 폐차해야 될 정도였고 휘발유는 무연휘발유가 아니어서 앞에 가는 자동차에서 나오는 시커먼 매연으로 앞을 보기 어려울 때가 많았고 옆으로 지나가는 자동차에서 나오는 매연가스로 창문을 열기 힘들었다. 대학시절 시골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에 오면 코속이 시커멓게 되는 경험을 오랜만에 다시 하게 되었다. 염소를 두세마리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낙네들이 길가에서 옥수수를 구워팔고, 어린 아이들이 구두통 위에 발을 올려놓은 사람의 구두를 닦아주며 돈을 버는 모습, 버스가 멈추면 구걸하는 아이들이나 아낙네들이 차옆으로 몰려 오고, 집의 담들은 한결같이 양철로 만들어 세워져 있고, 옛날 방식으로 건물을 짓는 모습 등 기타 시내 풍경들은 1960년대 초의 우리나라와 매우 흡사하였다.
그 곳에서 느낀 점은 질병의 치료에 앞서 원활한 물 사용, 위생개념에 대한 인식변화, 매연문제 해결 등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을 국민들에게 요구하기 전에 정부에서 기간 산업을 포함하여 전기, 수도, 도로, 환경개선 등의 문제를 하루 속히 해결해 주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1974년 이전에 부유한 나라가 Marxist 정부에 의해 왕위가 찬탈되고 의회가 해산하면서 공산화 되고 국민소득이 200불( 2006년 World Bank에서는 110불-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도 되지 않는 여려운 경제가 된 것에 대하여 우리도 항상 현재를 유지하고 더 발전하기 위하여는 이념 문제에 대한 확실한 정립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여러 가지 개인적인 희생을 하면서도 6.25 참전으로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행복하게 사는 것에 대한 조그만 보답을 할 수 있겠구나 하며 의료봉사에 참여 하였지만 교민이 300 명도 안 되는 나라에 가서 한국대사 얼굴도 보지 못하고 격려도 받아보지 못한 것은 우리나라 외교관들의 해외 활동에 문제점이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고 느꼈다. 자리에 앉지도 못하는 6.25 참전 6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였다가 한국 식당으로 이동하여 월드컵 아르헨티아와의 게임에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돌아오니 4:1로 패한 결과가 며칠간 진료로 힘들었던 몸을 더 나른하게 해주었다.
언어소통과 현지 안내를 위하여 우리가 체류하는 동안 헌신적으로 협조하여 준 KOICA 직원들, Ras desta 병원에서 봉사하고 있는 KOICA 소속 윤상철 의사선생님, 그리고 3일 간 매일 우리 선한봉사센터 팀원, VCS 봉사단원과 우리들을 도와준 모든 KOICA 직원들에게 무료로 김밥, 한식을 점심으로 제공하여 주신 그 곳 한인교회 문병학 목사님과 신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댓글목록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김용진선생님~에티오피아 봉사후기!! 감사합니다.
3일동안 2,500명이 넘는 환자들을 진료하시느라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환경에 적응하고 시차를 극복하느라 힘은 들었지만, 뜻깊은 봉사였고 6.25전쟁당시 우리나라와 같은 상황들을 보면서 더 감사하고, 진심으로 봉사를 할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선한봉사센터와 함께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많은 애정과 사랑으로 지켜봐주세요~
박한성님의 댓글
박한성 작성일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의 노고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